반야심경

출세간의 지혜, 얻을 것이 없음93) Transcendental Wisdom, No Attainment - The Heart Sutra - 20170416

XW 2023. 6. 5. 12:35

여러분은 먼저 출세간의 지헤를 열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세간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집착을 넘어섭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출세간적 지혜라고 하는 이유는 모든 세속적 집착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넘어선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세상의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출세간적 지혜가 있으면 모든 고통은 즉시 끝납니다. 출세간적 지혜를 열면 더이상 고통이 없습니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이 세상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무엇에 집착합니까? 딸에 아들에 집착합니다. 남편에 돈에 집착합니다. 손주에 집착합니다. 명예에 집착합니다. 잠에 음식에 집착합니다. 각각의 집착이 괴로움입니다. 거기에 집착할 때 그것이 없으면 괴롭습니다. 그것을 가져도 괴롭습니다. 그래서 모든 세속적인 것의 집착을 끊습니다. 그 때 출세간적 지혜가 열립니다. 

 

그것이 첫 단계입니다. 세속적 집착을 끊고 넘어서 머리를 명료하게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대승과 소승의 차이입니다. 대승에서 우리는 계속 나아갑니다. 출세간적 지혜를 열면 자유롭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괴롭힐 수 없습니다. 여전히 통증이 있지만 괴롭지 않습니다. 그것에 의해서 괴롭지 않습니다. 불교 스승의 목적은 여러분이 출세간적인 지혜를 얻도록 돕는 것입니다. 

 

선화상인은 진정한 스승이었습니다. 그가 한 모든 것은 여러분이 출세간적 지혜를 열게끔 돕는 것이었습니다. 조사들의 삶의 목적은 해탈을 얻게끔 돕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은 여러분이 해탈을 얻게끔 돕습니까? 그들이 주로 하는 것은 출세간적인 복을 심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출세간적인 복을 심도록 돕습니다. 출세간의 복과 세간의 복은 어떻게 다른가요?. 세간의 복은 무엇이 있을까요? 돈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것이 중요한 복임을 압니다. 하지만 단지 이것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세속의 복입니다. 세속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더이상 에고에 탐닉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섬기려는 욕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머리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세속적인 지혜를 엽니다. 대승의 수행자는 한단계 더 나아갑니다. 다음 단계는 다른 사람들이 세속적 지혜를 열게끔 도와주는 것입니다. 

 

에고에서 벗어난 후 다시 진흙구덩이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세속적인 것을 배우고 익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돕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하기 위해 그들은 배웁니다. 그들은 출세간적 지혜를 열면 더 이상 빨간차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빨간 차를 가지게끔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하기 위해 모든 세상의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보살들은 우리 세상에 와서 의학과 건축을 가르쳤습니다. 동양의학은 사실 보살들이 만든 것입니다.

 

에고에 대한 집착이 없으면 명료한 마음으로 인간의 지식을 개발합니다. 인간의 지식을 깊게 더 발달시킵니다. 카톨릭을 원하면 카톨릭을 향상시킵니다. 더 많이 지혜로울수록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경향은 줄어듭니다. 명예를 구하지 않고 자신을 이롭게 하지 않습니다. 선화상인은 제가 만난 사람 중에 유일하게 자신의 이로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데 만족감을 구한다면 진정 남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돕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에는 에고가 있습니다. 누가 즐깁니까? 보살은 남을 돕지만 남을 돕는 자가 없습니다. 아무도 남을 돕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에고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돕지만 돕는 자가 없습니다. 에고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돕지 않음을 봅니다.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에고가 없는 사람도 기쁨과 만족을 느끼나요? 그들의 경험은 우리와 약간 다릅니다. 첫째 그들도 기쁨과 만족을 경험합니다. 에고는 없지만 불성은 여전히 기쁨과 만족을 경험합니다. 에고는 사라졌지만 불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기쁨과 만족을 경험합니다. 에고가 사라진 후 목석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과 만족은 에고가 있을 때보다 더 강렬합니다. 괴로움도 경험하고 즐거움도 경험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보살들은 세상에 와서 인간의 지식을 향상시켰습니다. 출세간 지혜를 세속적 지혜에 적용해서 세속적 지혜를 진보시킵니다. 

 

지혜도 얻음도 없다는 것은 상이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성취한 것은 별거 아닙니다. 성스러운 과도 별거 아닙니다. 그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결과와 얻음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걸림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에고가 없으면 오온이 공합니다. 에고가 공하면 모든 것이 공합니다. 아라한과도 별거 아닙니다. 아라한과 벽지불은 그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얻음이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집착합니다. 반면에 대승에서는 별거 아니야라고 합니다. 그것이 대승과 소승의 차이입니다. 더 큰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보살들도 얻음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성취는 소승의 성취보다 어려워서 그들도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별거 아닙니다. 이것이 수행자들의 약점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해서 과를 얻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체됩니다. 스승이 그들을 제대로 준비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얻음이 없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것이 대승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매 단계가 별거 아닙니다. 

 

깨달은 보살은 마음에 걸림이 없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장애가 없습니다. 업의 장애가 없습니다. 세가지 장애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과보입니다. 전에 다른 사람들을 장애해서 이제 그들이 여러분을 장애합니다. 두번째는 업보입니다. 업보는 여러분이 일을 하는데 겪는 어려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