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고통, 스승 35) 08/09/15 - Doubt

XW 2023. 9. 21. 00:49

첫번째 진실은 고통의 진실입니다. 삶은 고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과도하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야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필요합니다. 불교에서는 왜 여러분이 고통스러운지 고통스런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끝내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교가 너무 수동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우 적극적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는 고통, 여러분에게 문제가 되는 고통을 끝내도록 노력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를 맹목적으로 믿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치에 맞으면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치에 맞는지 봐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조사들은 고통을 끝내는 법을 알지 않는 이상 가르치지 말라고 합니다.어떻게 누군가가 고통을 끝냈는지 어떻게 압니까? 여러분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고통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고통을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고통을 싫어한다면 적어도 그것과 싸울 기회는 있습니다. 고통을 매우 좋아한다면 우리는 여러분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쌓입니다. 고통을 선택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윤회에 갇혀있는 이유는 고통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보지 않는 한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서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진정 고통을 느끼면 그것을 끝낼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완전히 끝내지 않아도 됩니다. 영원히 끝내는 과정은 매우 긴 시간이 걸립니다. 영원한 해탈의 길을 향해 가면서 여러분은 일시적으로 해탈을 경험합니다.  

 

여러분은 고통을 줄여야 합니다. 고통이 괜찮다고 느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부자이고 성공적일 때 탐닉합니다. 그들은 더 많은 잘못을 짓습니다. 그러면 고통을 끝내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고통은 무시이래로부터 쌓여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에 매우 매여있습니다. 

 

6가지 주요 번뇌는 탐,진,치,만,의,부정견입니다. 의심 중에서 가장 나쁜 의심은 스승에 대한 의심입니다. 스승을 의심하지 마세요. 어떻게 깨달은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군가가 고통을 끝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고통을 끝내지 않은 사람만이 고통을 끝냈다고 말합니다. 고통을 끝내면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끝낸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서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스승은 결코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승에서는 스승을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진언을 전수 받았습니다. 법을 전수 받았습니다. 법을 수행할 때 문제가 있으면 누가 도와줍니까? 스승입니다. 스승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궁극적으로 복을 지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조사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합니다. 아무 스님이나 믿지 않습니다. 큰 절이 있다고 돈이 많다고 제자가 많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해탈의 기준이 아닙니다. 조사는 여러분을 해탈로 이끕니다. 조사가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보세요. 조사에 믿음을 두세요. 법이 아닌 스승을 믿습니다. 

 

부정견은 무엇입니까? 부정견은 자신이 틀렸는데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5가지 리사로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 견취 · 계금취입니다. 유신견은 무엇입니까? 내가 몸이 있습니다. 편안하고자 합니다. 기분이 좋고자 합니다. 몸에 집착합니다. 변집견은 죽어서 영원하거나 영원히 멸한다고 믿습니다. 사견은 인과를 믿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