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에 든 자 13) 반야심경 20141207
부처님은 에고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부처님만이 에고와 에고의 그림자를 완전히 없앨 수 있습니다. 에고를 없앤 후에도 여전히 에고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것에 에고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에고는 우리 정신에 자취를 남깁니다. 그래서 에고를 없애도 에고의 그림자가 마음에 드리워서 항상 거기 있습니다. 에고를 없애면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에고의 그림자가 계속 드리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가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우리는 많은 생동안 에고가 드리운 그림자를 없애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경은 올바른 길로 가는 방향을 가르킵니다. 경에는 여러분이 진전함에 따라 만나는 중요한 단계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또한 경에는 어떻게 그런 단계에 도달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되어 있습니다.
경을 공부하고 배우면 에고가 오온으로 이루어짐을 이해합니다. 이 오온은 항상하지 않습니다. 항상하지 않음이 핵심입니다. 오온이 무상함을 관합니다.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또한 고통에 매여있고 에고가 없음을 관합니다. 그러면 수다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오온, 에고가 무상함을 봅니다. 고통이 가득함을 봅니다. 그러면 수다원과를 증득합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앉아서 다리가 아픕니다. 이것을 적용합니다. 고통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멈출 것입니다. 또한 고통받는 자가 없습니다. 그것은 공합니다. 여러분이 지혜가 있다면 이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흐름에 든 자는 무슨 의미입니까? 성인의 흐름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흐름에 든 자라고 합니다. 흐름에 들면 힘을 들이지 않고 본질을 향해 흘러갑니다. 계속해서 더 높은 단계로 진전할 것입니다. 이 단계는 성인에 들어서 힘을 들이지 않아도 높이 올라갑니다.
왜 흐름에 들었다고 합니까?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한 귀로 들어갔다가 다른 귀로 나갑니다. 자취를 남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나갑니다. 여러분은 고요히 있고 모든 것은 여러분을 통해서 흘러갑니다. 자취는 없습니다. 그래서 보았지만 보지 않은 것 같고 들었지만 듣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청중:우울합니다.
우울한 이유는 생각이 기분나쁘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기분 나쁘다고 하고 여러분은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기분 나쁘게 있고 싶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울한 생각이 지나가게 하면 우울하지 않습니다.
흐름에 든 자라는 의미는 여러분은 거기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바보라고 모욕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합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듣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전히 듣지만 어떤 반응도 하지 않습니다. 이 다섯가지 외적인 것들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주게끔 하지 않습니다. 색성향미촉은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고요합니다. 내려놓으세요. 내면에서 반응하지 마세요. 그것을 인지하지만 반응하지 않습니다. 모욕을 당하면 인지하고 내려놓으세요. 화가 난 것을 인지하면 멈추세요. 화를 내지 마세요.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면 내려놓으세요. 그것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인지하지만 그것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흐름에 든 자라는 의미입니다.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분이 나쁩니다. 계속 기분이 나쁜 이유는 그 생각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나쁜 구실을 찾습니다. 그 상태를 정당화합니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인지하고 내려놓습니다. 처음에는 내려놓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은 점점 빨라지고 흐름에 들면 바로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초선에서는 식욕, 색욕, 수면욕을 내려놓기가 힘듭니다. 각각의 다른 단계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이 다르고 여러분은 그것들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합다. 선지식은 그것에 대해서 압니다.
모든 생각이 머리 속에서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먼저 내려놓아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한 번에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 선별을 해서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을 해서 그것을 다루어야 합니다. 선지식은 여러분이 어떤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알 수 없습니다. 수천가지 생각이 모두 중요하고 모두 강력합니다.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그것의 무상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는 그 생각이 고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혹은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해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고통임을 자각하면 바로 내려놓습니다. 여러분이 기분 나쁜 이유는 그 생각으로 기분나빠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끝일 수도 있습니다. 먹을 음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입을 옷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괴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괴롭지 않습니다. 물론 힘듭니다. 옷이 없으면 춥습니다. 마실 물이 없으면 갈증이 납니다. 몸은 갈증이 나지만 마음은 괜찮습니다. 몸이 경험하는 것과 마음이 경험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것은 두가지 별개입니다. 다리가 아픕니다. 머리 속에서 다리를 풀라고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누가 다리를 풀라고 합니까? 마음입니다. 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말합니다.
궁극적으로 자취가 없습니다. 진정 내려놓는다면 자취가 없습니다. 거기에 집착을 하지 않고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믿지 마세요. 여러분은 그것이 정상이라고 자신을 속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울한 사람들의 문제는 다른 사람 말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스승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뭔가를 말해줘도 듣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여러분은 동의하지 않아서 그만둡니다. 그러면 흐름에 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아. 그것은 별 것 아니야. 그것은 좋지 않아. 고통받는 자는 없어.”라고 말해도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되었습니다. 고통을 즐거움으로 여기고 즐거움을 고통으로 여깁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려놓는 것을 거부합니다.